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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광 받는 캠핑, 수면 리듬 조절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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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잠을 벌충하려고 출근길에 꾸벅꾸벅 졸다 보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회의감이 깊어지면 이제 현대문명에 그 죄를 묻기도 한다. 차라리 현대 전이었다면 잠이라도 마음껏 잤을 것을….
정말 그럴까. 이제 와 고대나 중세시대의 수면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충분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세, 다시 말해 중세에서 산업혁명 전까지 시대부터는 어느 정도 기록이 남아 있는 편이다. 그리고 근세 기록에 남아 있는 수면은 상상하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당시 수면은 주변의 방해(?)로 자주 교란되기 일쑤였던 것 같다. 영국 시인 프랜시스 퀄스(1592~1644)는 ‘우리의 잠에는 종종 섬뜩한 악몽과 밤의 위험이 따라온다’고 썼다. 18세기 일기를 보면 벌레나 모기, 고양이 소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옆방에서 들여오는 다른 사람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이 많다. 근세 기록에서 다뤄진 밤에 대해 연구한 로저 에커치 미국 버지니아공대 역사학 교수는 저서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에서 당시의 잠에 관한 기록은 ‘제대로 잠을 못 이뤘다’ ‘방해를 받았다’ ‘공포에 잠에서 깼다’ 등의 표현이 빈번하다고 평가한다.
근대 이전에는 두 번 나눠 자는 게 일상
잠에 대한 근세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에는 잠을 두 번으로 나눠 자는 것이 예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프랑스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영어 기록 모두에 ‘첫 번째 잠’이라는 표현이 공통으로 존재한다는 점은 이것이 유럽 전역에서 일상적이었음을 암시한다.
옆방에서 코를 고는 사람이 유럽 전역에 퍼져 있었다는 걸까, 에커치 교수는 “많은 자료가 그보다는 중간에 잠에서 깨는 게 일상적이었음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잠’이라는 표현은 초기 기독교 시절에도 등장하고, 심지어 플루타르코스도 자신의 저술에 사용했다. 심지어 인류학자들은 아프리카 부족사회에서도 ‘첫 번째 잠’과 ‘두 번째 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1992년 발표된 유명한 논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토머스 베어 박사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일체의 인공조명을 제거했더니 몇 주가 지난 후 2개로 분할된 수면 패턴이 공통으로 관측됐다고 발표했다. 피실험자들은 침대에 누워 2시간가량을 깨어 있다 4시간을 잤고, 다시 깨어나 2~3시간을 보내다 다시 4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이는 에커치 교수가 문헌자료에서 확인한 근세인의 수면 패턴과 일치한다.
흥미롭게도 베어 박사는 중간에 깨어 있는 시간에 (아마도 옆방의 코 고는 소리에 깨는 것이 아닌 이상) 피실험자들이 불안감을 동반하지 않은 독특한 각성 상태에 있는 것을 관측했다. 이때 여성에게는 젖 분비를 자극하고 남성에게는 남성호르몬 분비를 자극하는 프로락틴 수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베어 박사는 이때의 각성 상태가 명상할 때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호르몬 분비 상태에 대해서는 몰랐겠지만, 그 시대 의사들도 이 시간이 아이를 갖기 가장 좋은 때라는 건 알고 있었다. 16세기 프랑스 내과의사 로랑 주베르는 첫 번째 잠 이후의 성교가 ‘더 기분이 좋고’ ‘더 잘하게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16세기 영국 의사 토머스 코건도 비슷한 조언을 한 바 있다.
추천 수면시간은 8시간
그렇다면 근세에는 어느 정도의 수면시간을 추천했을까. 뜻밖에도 요즘의 추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에커치 교수는 유럽 전역의 문필가들이 통상적으로 6~8시간의 수면을 추천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에 특별한 근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단지 하루 24시간 중 3분의 1 이상을 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런데 8시간이 과하다는 의견도 적잖았던 듯하다. ‘남자는 6시간, 여자는 7시간, 바보는 8시간’이라는 격언도 있고, 자연 상태에서는 5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영국 성직자 제러미 테일러(1613~1667)는 단 3시간의 수면을 권했다.
현대과학이 추천하는 수면시간은 어떨까.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사실 사람마다 적절한 수면시간이 다르다는 것은 16세기 의사 앤드루 보드도 제시한 관념이었다. 하지만 근래의 연구 결과들은 정반대로 대부분 8시간 수면이라는 관습의 편을 든다. 연구에 따르면 수면시간을 통제되지 않고 인공조명을 차단한 경우 결국 평균 수면시간이 8시간으로 수렴된다고 한다.
궁금한 것은 그다음이다. 만약 가장 자연스러운 8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한 전직 대통령은 자신이 매일 4시간만 잔다고 자랑스레 말했고,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은 잠을 너무 많이 자 문제인 것 같지 않았나.
놀랍게도 수면시간이 약간만 모자라도 그 피해는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3년 수행된 2개의 연구 결과가 결정적이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피실험자를 4개 그룹으로 나누고 2주간 실험을 했다. 첫째 그룹은 매일 8시간, 둘째 그룹은 6시간, 셋째 그룹은 4시간만 잘 수 있었고, 넷째 그룹은 사흘 동안 잠을 못 자게 했다. 이렇게 한 다음 각각의 인지능력을 측정한 연구진은 하루를 꼬박 새우면 인지능력이 술에 만취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데, 놀라운 것은 다른 그룹의 경우였다. 열흘 동안 하루 6시간 잠을 잔 그룹의 인지능력은 하루를 꼬박 새운 그룹의 인지능력과 비슷했다. 하루 4시간 잠을 잔 그룹은 단 사흘 만에 그 정도로 인지능력이 떨어졌다.
7시간 정도라면 어떨까. 같은 해 미국 월터리드육군병원에서 실시한 다른 실험은 똑같은 방법으로 피실험자를 하루 7시간, 5시간, 3시간 수면으로 나눴다. 7시간을 잔 그룹도 닷새 만에 8시간 수면군보다 인지능력이 3배나 떨어졌다. 임금을 협상하는 자리에서 미군들에게 줄곧 ‘4달라’만 외쳤던 ‘야인시대’의 김두한처럼, 우리 몸은 그 어떠한 협상 노력에도 언제나 ‘8시간’을 외치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연구 결과는 이 실험 이후에 나왔다. (우리 모두 그렇듯) 주중에 모자랐던 잠을 주말에 벌충하면 어떨까. 이 정도면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 아닌가.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에게 사흘간 마음껏 잠을 자게 한 다음 다시 인지능력을 테스트했다. 그러나 실험 초기에 나온 인지능력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주말 이틀 동안 마음껏 자더라도 인지능력은 회복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연구진은 처음의 인지능력을 회복하는 데 대체 얼마나 걸리는지를 측정할 수 없었다고 한다(이는 단순히 실험 기간의 제약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좀 추워야 수면의 질 높아
수면은 양 못지않게 질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면서 일상생활에 적합하게 잠을 잘 수 없다고 호소하지만,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의외로 수면 패턴을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도 24시간 주기로 운영되는데, 이 신체 주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빛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이 드는 게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그러나 인공조명과 스마트폰에 포위된 현대인은 이런 신체 주기가 교란되기 십상이다. 이를 교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2017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틀을 아웃도어에서 캠핑하는 것만으로도 신체 주기를 2시간 반 정도까지 자연스러운 주기에 맞추는 일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낮에 충분히 자연광에 노출되고 해가 진 다음 완전한 어둠에 놓이는 것이 신체의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판단했다. 캠핑 마니아는 이제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캠핑을 권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캠핑이 싫은 애인과 배우자에게도 반격의 기회는 있다. 핵심은 낮에 충분히 자연광을 쬐는 것과 야간에 최대한 빛 노출을 피하는 것이다. 특히 컴퓨터나 TV,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청색광은 수면 리듬을 해치기로 악명이 높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암막 커튼은 필수다. 침실 내부를 거의 완벽한 어둠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터넷 공유기나 멀티탭에서 나오는 빛도 스티커를 붙이거나 뒤집는 방법 등으로 최대한 차단한다.
인간의 신체 리듬이 빛에 반응하기 때문에 알람시계도 소리보다 빛을 사용하는 것이 상쾌한 기상에 더 도움이 된다. 국내에서는 많이 판매되지 않지만 동이 트는 것을 비슷하게 구현한 알람시계를 해외 직구로 살 수 있다. 필자는 2년 넘게 이 시계를 사용하고 있는데 알람 벨이 울리기 전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침실 온도도 중요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침실 온도가 15~18도일 때 수면의 질이 가장 높다고 한다. 적절한 수면을 위해서는 몸 중심부와 뇌의 온도가 떨어지면서 혈당과 심박수가 감소해야 하는데, 침실 온도가 높으면 이것이 방해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15~18도는 겨울철에 난방하지 않은 실내 온도에 가깝다. 뜨거운 물을 담은 고무팩(워터보틀)을 발쪽에 두거나 수면 양말, 침낭을 쓰는 것도 좋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철에는 실내 온도를 이렇게 맞추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수면의 질에 대한 호소도 여름에 가장 많다. 2019년 중국에서 시행한 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선풍기와 실링 팬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수면의 질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해 숙면을 취하도록 하자.
김수빈 유튜브 크리에이터·자유기고가 mail@subinkim.com
출처 : https://weekly.donga.com/3/all/11/2157945/1
정말 그럴까. 이제 와 고대나 중세시대의 수면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충분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세, 다시 말해 중세에서 산업혁명 전까지 시대부터는 어느 정도 기록이 남아 있는 편이다. 그리고 근세 기록에 남아 있는 수면은 상상하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당시 수면은 주변의 방해(?)로 자주 교란되기 일쑤였던 것 같다. 영국 시인 프랜시스 퀄스(1592~1644)는 ‘우리의 잠에는 종종 섬뜩한 악몽과 밤의 위험이 따라온다’고 썼다. 18세기 일기를 보면 벌레나 모기, 고양이 소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옆방에서 들여오는 다른 사람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이 많다. 근세 기록에서 다뤄진 밤에 대해 연구한 로저 에커치 미국 버지니아공대 역사학 교수는 저서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에서 당시의 잠에 관한 기록은 ‘제대로 잠을 못 이뤘다’ ‘방해를 받았다’ ‘공포에 잠에서 깼다’ 등의 표현이 빈번하다고 평가한다.
근대 이전에는 두 번 나눠 자는 게 일상
잠에 대한 근세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에는 잠을 두 번으로 나눠 자는 것이 예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프랑스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영어 기록 모두에 ‘첫 번째 잠’이라는 표현이 공통으로 존재한다는 점은 이것이 유럽 전역에서 일상적이었음을 암시한다.
옆방에서 코를 고는 사람이 유럽 전역에 퍼져 있었다는 걸까, 에커치 교수는 “많은 자료가 그보다는 중간에 잠에서 깨는 게 일상적이었음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잠’이라는 표현은 초기 기독교 시절에도 등장하고, 심지어 플루타르코스도 자신의 저술에 사용했다. 심지어 인류학자들은 아프리카 부족사회에서도 ‘첫 번째 잠’과 ‘두 번째 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1992년 발표된 유명한 논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토머스 베어 박사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일체의 인공조명을 제거했더니 몇 주가 지난 후 2개로 분할된 수면 패턴이 공통으로 관측됐다고 발표했다. 피실험자들은 침대에 누워 2시간가량을 깨어 있다 4시간을 잤고, 다시 깨어나 2~3시간을 보내다 다시 4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이는 에커치 교수가 문헌자료에서 확인한 근세인의 수면 패턴과 일치한다.
흥미롭게도 베어 박사는 중간에 깨어 있는 시간에 (아마도 옆방의 코 고는 소리에 깨는 것이 아닌 이상) 피실험자들이 불안감을 동반하지 않은 독특한 각성 상태에 있는 것을 관측했다. 이때 여성에게는 젖 분비를 자극하고 남성에게는 남성호르몬 분비를 자극하는 프로락틴 수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베어 박사는 이때의 각성 상태가 명상할 때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호르몬 분비 상태에 대해서는 몰랐겠지만, 그 시대 의사들도 이 시간이 아이를 갖기 가장 좋은 때라는 건 알고 있었다. 16세기 프랑스 내과의사 로랑 주베르는 첫 번째 잠 이후의 성교가 ‘더 기분이 좋고’ ‘더 잘하게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16세기 영국 의사 토머스 코건도 비슷한 조언을 한 바 있다.
추천 수면시간은 8시간
그렇다면 근세에는 어느 정도의 수면시간을 추천했을까. 뜻밖에도 요즘의 추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에커치 교수는 유럽 전역의 문필가들이 통상적으로 6~8시간의 수면을 추천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에 특별한 근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단지 하루 24시간 중 3분의 1 이상을 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런데 8시간이 과하다는 의견도 적잖았던 듯하다. ‘남자는 6시간, 여자는 7시간, 바보는 8시간’이라는 격언도 있고, 자연 상태에서는 5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영국 성직자 제러미 테일러(1613~1667)는 단 3시간의 수면을 권했다.
현대과학이 추천하는 수면시간은 어떨까.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사실 사람마다 적절한 수면시간이 다르다는 것은 16세기 의사 앤드루 보드도 제시한 관념이었다. 하지만 근래의 연구 결과들은 정반대로 대부분 8시간 수면이라는 관습의 편을 든다. 연구에 따르면 수면시간을 통제되지 않고 인공조명을 차단한 경우 결국 평균 수면시간이 8시간으로 수렴된다고 한다.
궁금한 것은 그다음이다. 만약 가장 자연스러운 8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한 전직 대통령은 자신이 매일 4시간만 잔다고 자랑스레 말했고,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은 잠을 너무 많이 자 문제인 것 같지 않았나.
놀랍게도 수면시간이 약간만 모자라도 그 피해는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3년 수행된 2개의 연구 결과가 결정적이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피실험자를 4개 그룹으로 나누고 2주간 실험을 했다. 첫째 그룹은 매일 8시간, 둘째 그룹은 6시간, 셋째 그룹은 4시간만 잘 수 있었고, 넷째 그룹은 사흘 동안 잠을 못 자게 했다. 이렇게 한 다음 각각의 인지능력을 측정한 연구진은 하루를 꼬박 새우면 인지능력이 술에 만취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데, 놀라운 것은 다른 그룹의 경우였다. 열흘 동안 하루 6시간 잠을 잔 그룹의 인지능력은 하루를 꼬박 새운 그룹의 인지능력과 비슷했다. 하루 4시간 잠을 잔 그룹은 단 사흘 만에 그 정도로 인지능력이 떨어졌다.
7시간 정도라면 어떨까. 같은 해 미국 월터리드육군병원에서 실시한 다른 실험은 똑같은 방법으로 피실험자를 하루 7시간, 5시간, 3시간 수면으로 나눴다. 7시간을 잔 그룹도 닷새 만에 8시간 수면군보다 인지능력이 3배나 떨어졌다. 임금을 협상하는 자리에서 미군들에게 줄곧 ‘4달라’만 외쳤던 ‘야인시대’의 김두한처럼, 우리 몸은 그 어떠한 협상 노력에도 언제나 ‘8시간’을 외치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연구 결과는 이 실험 이후에 나왔다. (우리 모두 그렇듯) 주중에 모자랐던 잠을 주말에 벌충하면 어떨까. 이 정도면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 아닌가.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에게 사흘간 마음껏 잠을 자게 한 다음 다시 인지능력을 테스트했다. 그러나 실험 초기에 나온 인지능력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주말 이틀 동안 마음껏 자더라도 인지능력은 회복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연구진은 처음의 인지능력을 회복하는 데 대체 얼마나 걸리는지를 측정할 수 없었다고 한다(이는 단순히 실험 기간의 제약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좀 추워야 수면의 질 높아
수면은 양 못지않게 질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면서 일상생활에 적합하게 잠을 잘 수 없다고 호소하지만,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의외로 수면 패턴을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도 24시간 주기로 운영되는데, 이 신체 주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빛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이 드는 게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그러나 인공조명과 스마트폰에 포위된 현대인은 이런 신체 주기가 교란되기 십상이다. 이를 교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2017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틀을 아웃도어에서 캠핑하는 것만으로도 신체 주기를 2시간 반 정도까지 자연스러운 주기에 맞추는 일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낮에 충분히 자연광에 노출되고 해가 진 다음 완전한 어둠에 놓이는 것이 신체의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판단했다. 캠핑 마니아는 이제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캠핑을 권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캠핑이 싫은 애인과 배우자에게도 반격의 기회는 있다. 핵심은 낮에 충분히 자연광을 쬐는 것과 야간에 최대한 빛 노출을 피하는 것이다. 특히 컴퓨터나 TV,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청색광은 수면 리듬을 해치기로 악명이 높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암막 커튼은 필수다. 침실 내부를 거의 완벽한 어둠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터넷 공유기나 멀티탭에서 나오는 빛도 스티커를 붙이거나 뒤집는 방법 등으로 최대한 차단한다.
인간의 신체 리듬이 빛에 반응하기 때문에 알람시계도 소리보다 빛을 사용하는 것이 상쾌한 기상에 더 도움이 된다. 국내에서는 많이 판매되지 않지만 동이 트는 것을 비슷하게 구현한 알람시계를 해외 직구로 살 수 있다. 필자는 2년 넘게 이 시계를 사용하고 있는데 알람 벨이 울리기 전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침실 온도도 중요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침실 온도가 15~18도일 때 수면의 질이 가장 높다고 한다. 적절한 수면을 위해서는 몸 중심부와 뇌의 온도가 떨어지면서 혈당과 심박수가 감소해야 하는데, 침실 온도가 높으면 이것이 방해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15~18도는 겨울철에 난방하지 않은 실내 온도에 가깝다. 뜨거운 물을 담은 고무팩(워터보틀)을 발쪽에 두거나 수면 양말, 침낭을 쓰는 것도 좋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철에는 실내 온도를 이렇게 맞추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수면의 질에 대한 호소도 여름에 가장 많다. 2019년 중국에서 시행한 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선풍기와 실링 팬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수면의 질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해 숙면을 취하도록 하자.
김수빈 유튜브 크리에이터·자유기고가 mail@subinkim.com
출처 : https://weekly.donga.com/3/all/11/21579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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